르 코르뷔지에와 김중업,
두 건축가의 대화
11월 7일부터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전시가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연희정음에서 동시에 열린다. 한국 건축의 명작으로 꼽히는 프랑스대사관은 한국의 대표 건축과 김중업과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운명적 만남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일반인에게 닫혀 있던 ‘신화적 명작’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르 코르뷔지에와 운명적인 만남
김중업(1922-1988)은 한국 근현대 건축의 문을 연 인물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서 나카무라 준페이 교수에게 프랑스 보자르식 건축 교육을 받으며, 건축을 예술의 한 분야로 이해했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서울대학교, 한양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새로운 시대의 건축 방향을 고민했다.

김중업 (1922-1988)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부산으로 피난갔던 당시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 예술가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인생의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와의 만남이었다. 김중업은 그의 철학에 강하게 매료되어 파리로 건너가 아틀리에에 합류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는 한국인 최초로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의 정식 건축가로 일하게 되었다. 약 3년 가까이 수습을 거쳐 수제자로 일하며, 인도의 신도시 찬디가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훗날 스위스 10프랑 지폐 앞면에는 스승인 르 코르뷔지에의 사진이 뒷면에는 그가 작업한 찬디가르 행정사 도면이 나란히 새겨진다. 김중업은 이 시기를 통해 근대건축의 합리적 구조, 도시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예술로서의 건축을 몸소 배웠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스위스 10프랑에 새겨진 르 코르뷔지에(좌)
찬디가르 행정사 도면(우)
1955년 귀국한 그는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건축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부산대학교 (현 일문관, 1956), 고려대학교 도서관(1956), 서강대학교 본관(1958) 등을 초기 대표작으로, 서구 모더니즘의 질서와 한국적 정서를 조화롭게 결합했다. 동시에 그는 한국 전통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며 문화재 보존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석굴암 전실 연구를 진행하는 등 지역성과 역사성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늘 예술가적 감성이 배어 있었다. 화가 김환기, 박수근, 시인 오상순 등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건축을 하나의 ‘종합예술’로 인식했다. 실제 주한프랑스대사관 영사관에는 화가 윤명로, 김종학과 함께 모자이크 벽화를 특징적으로 넣었다. 건축계 협업의 무대이며, 예술적 실험의 장이었다. 1957년 한국 건축가 최초의 개인전 <김중업 건축작품전>을 개최했고, 1971년에는 프랑스 감독과 함께 자신의 건축을 배경으로 한 영화 <건축가 김중업>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단순한 공간을 짓는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시대의 감수성을 건축에 일으켰다.
한국성을 담은 시대의 명작, 주한 프랑스대사관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대사관(1959-1961)은 김중업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건축의 상징이다. 그는 스승 르 코르뷔지에의 추천을 받아 프랑스 건축가들과 함께 국제공모에 참여했고, 그 가운데 당선되어 2년에 걸쳐 건물을 완성했다.
이 건물의 핵심은 ‘한국적 현대성’이다. 유려한 곡선의 노출콘크리트 지붕은 전통 기와지붕의 선을 추상화한 것이고, 경사진 대지의 흐름에 맞춰 건물을 비스듬히 틀어 배치한 구성은 한옥의 ‘채 나눔’과 배치를 연상시킨다. 건물은 대사관저, 대사집무동, 직원동의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걷는 방향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입체적 동선을 통해 ‘건축적 산책’을 구현한다. 전통 석물과 수목을 이용한 조경, 한국의 전통 문양을 재해석한 장식, 대청마루를 연상시키는 개방적 내부 등에서도 한국적인 미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르 파빌리온 김중업 © 김용관
이 건물은 완공 직후부터 ‘한국 근대건축의 기념비’로 평가받았다. 실제 1992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수여한 ‘건축25년상’ 첫 수상작이었고, 2013년 건축전문지 「SPACE」가 선정한 한국현대건축 명작 중에서는 김수근의 공간사옥에 이어 두 번째로 꼽혔다. 김중업은 이 건물을 통해 서구의 모더니즘을 모방하지 않고, 한국적 정서를 서정적으로 녹여냈다. 그가 말한 “빛과 그림자의 언어”는 프랑스대사관의 처마와 마당, 물결치는 곡면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흐르며 변화도 있었다. 1970-80년대 대사관의 기능 확장과 보수 과정에서 대사 집무동 1층 필로티가 막히고, 상징적이던 곡면 지붕이 평평한 형태로 바뀌었다. 정원의 연못이 메워지고, 옥상 정원도 폐쇄되었다. 일부 건물은 증축되며 원형이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여전히 한국 건축사의 ‘신화적 존재’로 남았다. 외부의 출입이 통제된 외교공관이라는 점 때문에 실물을 본 이가 드물었고, 오히려 그 신비감이 명작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집무동 1층 필로티가 막혔다.
다시 깨어난 열린 건축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프랑스문화원과 아뚜프랑스 등 외부에 흩어져 있던 유관 기관을 한데 모으고,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초기 디자인이 많이 훼손된 대사집무동의 철거안도 검토되었지만, 보존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결국 2016년 지명공모를 통해 매스스터디스(조민석)와 SATHY(윤태훈)의 공동 제안이 최종 당선되었다.
두 건축가는 ‘보존과 변주’라는 원칙으로 접근했다. 훼손된 대사집무동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르 파빌리온 김중업’이라 명명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는 오피스 타워 ‘라 투르 드 프랑스’를 신축하고, 진입과 갤러리 역할을 하는 ‘라 주테’를 추가했다. 세 건물은 각자의 축을 맞추어 배치되었으며, 색과 재질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표현했다. 규모가 기존보다 4배나 커진 신축 공간은 어두운 색조로 눌러, 오히려 김중업의 원래 건물이 더 또렷이 보이게 했다.

김중업 파빌리온(좌), 라 주테(우) © 김용관
라 주테의 넓은 캐노피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상징적 입구이자, 하늘을 프레이밍하는 장치로 설계 되었다.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직선과 곡선의 처마가 맞물리며, 마치 김중업이 의도한 하늘을 다시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검은색의 라 투르의 루버와 돌출 구조체는 수평 리듬을 만들어내며 원작의 미감을 계승했고, 거칠게 드러난 용접 자국은 노출콘크리트의 질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라 주테의 옥상정원과 외부 테라스에는 경사진 대지 위에서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새 건물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원작을 돋보이게 하는 ‘겸손한 배경’으로서 기능한다.

라 주테의 넓은 캐노피와 김중업 파빌리온의 곡선 처마 © 김용관
김중업의 건축적 이상
김중업에게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의 언어였다. 그는 “건축은 빛과 그림자의 시(詩)”라고 말하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공간을 추구했다. 프랑스대사관에서 빛은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만들고, 깊은 처마는 그늘과 휴식을 선사하며, 물과 나무는 공간의 리듬을 완성한다. 그는 전통의 미를 장식으로 옮기는 대신, 그 정신과 구조를 현대적 방식으로 번역했다. 그 결과 프랑스 대사관은 서구적 합리성과 동양적 서정이 공존하는 드문 건축이 되었다.
특히 리모델링을 거치며 그의 철학은 오늘의 시점에서 되살아났다. 조민석과 윤태훈은 원작의 형식을 흉내 내기보다, 그가 가졌던 ‘조화의 태도’를 이어받았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주인공을 빛내는 조연처럼 행동한다. 라 투르는 묵직한 어둠으로 복원된 곡면 지붕을 배경 삼고, 라 주테는 넓은 캐노피로 방문객을 환대하며, 세 건물은 과거와 현재가 공명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곡면 지붕을 배경 삼은 라 투르 © 김용관

라 주테의 넓은 캐노피 © 김용관
이제 프랑스대사관은 더 이상 ‘닫힌 신화’가 아니다. 여전히 외교공관으로서 제한은 있지만, 방문객은 훨씬 가까이에서 김중업의 건축을 경험할 수 있다. 반세기를 넘어 다시 깨어난 이 건물은, 한 건축가가 꿈꾸었던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 시대를 넘어 어떻게 새롭게 이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배운 합리성과 구조, 그리고 한국적 감성을 함께 품은 프랑스대사관은 지금도 살아 있는 대화의 현장이다. 이곳은 단순한 외교시설이 아니라, 한국 건축이 세계와 나누는 언어이자 문화적 상징이다. 빛과 그림자, 전통과 현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김중업이 남긴 가장 완전한 문장이다. 그 문장은 오늘도 남산의 바람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Credit
Editor
심영규
Photo
김용관(필자 제공 외)

